볼드윈의 꿈, 스크랜톤의 꿈

By | 11/09/2018

우리나라의 여성 교육을 위해 돈을 내놓은 기부자 1호는 누구일까. 1883년 9월 미국 감리교 해외 여성 선교회가 오하이오 주 라벤나에서 회의를 하고 있을 때 한 부인이 ‘조선 여성들을 위한 선교와 교육에 써 달라’면서 88달러를 헌금했다. 그의 이름은 루신다 B. 볼드윈이었다.

당시 인도 중국 일본에서 여성교육과 선교 사업을 하고 있던 여성 선교회는 볼드윈 부인의 기부를 계기로 조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885년 52세의 여성 선교사 메리 F. 스크랜톤을 조선에 파견했다. 스크랜톤 부인은 1886년 5월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을 설립했으며, 77세로 별세할 때까지 여성교육과 선교에 헌신했다.

여성교육 위한 기부자 1호

작은 마을 라벤나에 살던 볼드윈 부인은 어떻게 조선에 대해 알게 되었을까. 도쿄대 동양학 교수였던 그리피스의 <은자의 나라 조선>(1882년 뉴욕에서 발간)을 읽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 책은 당시 남존여비의 전통 속에 자신의 이름조차 갖지 못한 채 억눌려 살아가고 있던 조선 여인들의 처지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었다.

루신다 B. 볼드윈의 이름이 뜨겁게 떠오른 것은 2007년 여름 이화여고 북미주 동창들이 볼드윈의 고향인 라벤나를 방문하면서부터였다. 미 감리교 창립 150주년 기념 오하이오 동부 연회에 초대 받은 이화 동창 합창단은 찬송가와 교가를 부르면서 한 세기 전 학교를 세워 준 여성 선교회에 감사했고, 3,000여 명의 연회 참석자들은 감동적인 기립박수로 그들을 환영했다.

이화 동창들은 볼드윈 부인이 다니던 교회와 가족 묘를 참배하며 아름다운 인연을 다졌다. 그리고 한 세기 전 미국 여성 선교사들이 조선의 여성들을 위해 학교를 세웠듯이 저개발국 여성들이 교육 받을 수 있도록 돕자는 데 뜻을 모았다. 그들은 이화학당 설립자 스크랜톤의 이름을 붙인 장학금을 모금하기 시작했고, 2년 동안 26만 달러를 모았다.

지난 20일 뉴욕에서 북미주 총동창회를 연 그들은 1차로 모금한 돈을 미 감리교 여성 선교회에 기부하여 저개발국 여성들의 교육을 돕는 사업에 쓰기로 결정했다. 126년 전 ‘자기 이름도 갖지 못한’ 조선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 88달러를 기부했던 볼드윈 부인과 학교를 세우고 스승이 되어준 스크랜톤 부인에 대한 보은(報恩)의 헌금이었다. 모교의 발전기금이나 후배들의 장학금을 보내던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3세계의 여성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씨앗을 심겠다는 뜻 깊은 기부였다.

교육은 한국 여성들의 삶을 바꾸고 가정과 사회를 바꿨다. 교육 받은 여성 인재들은 나라와 세계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저개발국의 어려운 소녀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의 삶도 바뀔 것이다. 그들은 가정과 사회와 나라를 바꿀 것이며, 세계 발전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한 세기 전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조선 여성들에게 교육은 인간답게 사는 길을 찾게 해 준 등불이었다. 이제 제3세계 여성들이 등불 하나씩 들고 길을 찾을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백 년 후에 거둘 꽃과 열매

뉴욕에서 동창의 한 사람으로 스크랜톤 장학금 모금을 지켜보면서 씨앗을 뿌리고 꽃과 열매를 맺는 긴 세월을 생각해 보았다. 볼드윈 부인은 그 당시로는 적지 않은 돈인 88달러를 기부하면서 어떤 꿈을 꾸었을까. 학생을 구할 수 없어 버려진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던 스크랜톤 부인은 조선 여성의 미래를 어떻게 상상했을까. 우리가 오늘 돕고자 하는 어려운 나라의 여성들이 백 년 후에 거둘 꽃과 열매는 얼마나 엄청날까.

기부는 아름답다. 멀고 긴 꿈을 꾸는 기부는 더 아름답다. 우리가 생전에 볼 수 없더라도 기부는 확실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볼드윈의 꿈, 스크랜톤의 꿈이 열매 맺은 것처럼.

장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