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현수에게’

By | 11/05/2018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새 학년 첫날 번호 정할 때, 도토리처럼 키가 작은 아이들끼리 서로 조금 뒤로 가 보려고 애썼지만, 우리 둘은 맨 앞 줄에서 짝으로 만나게 되었지. 부잣집 맏며느리같이 푸근한 얼굴과 투박하면서도 애교있는 경상도 사투리가 너의 매력이었다. 수학 시간이면 너의 뛰어난 실력에 놀란 친구들이, 너를 수학의 천재하고 불렀었지. 국어시간에는 사투리 억양 때문에 수줍어하는 네 모습이 귀여웠어.

서울 서대문구 밖에는 나가 본 적이 별로 없는, 소심하고 나약한 서울 촌 아이였던 나는, 진주에서 서울로 유학와서 사촌언니와 씩씩하게 자취하던 너를 많이 의지 했었다. 학기말 시험 때만 되면 시험공부는 뒷전이고, 방학에 너를 따라 진주에 놀러갈 계획을 세우느라 바빴던 기억이 난다. 엄격한 우리 부모님 덕분에 실천은 못하고 늘 아쉬워 하곤 했지. 경주 수학여행 갈 때, 기차 속에서 우리 둘이 정답게 찍은 사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대학 졸업하고 결혼한 뒤에 너는 고향 진주에 자리잡고, 나는 유학생 남편 따라 미국에 와서 사느라, 서로 소식 모르고 지내다가 네가 내 소식을 궁금해 하더라는 이야기를 친구들을 통해 전해 들었다. 요즘처럼 카톡이라도 있었다면 그리 오래 소식 모르고 지내지는 않았겠지.

1999년 5월30일, 내가 오랜만에 서울을 방문했을 때, 아줌마가 된 우리들은 30년 만에 다시 만났다. 너무 반가워서 당시 유행하던 스티커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옆에 ’30년 만에 종로에서’라고 기념 문구를 새겨 넣었지. 다시 각자가 사는 먼 곳으로 헤어졌다가 여러 해 만에 진주에 있는 너희 작은 별장 매실농장에 친구들과 찾아 갔던 기억이 난다. 날렵하고 장난끼 넘치는 영옥이는 오디나무를 타고 올라, 가지에 매달려 오디를 신나게 따 먹는데, 겁장이 나는 영옥이가 떨어질까 조바심하며 나무 밑에서 내려 오라고 소리 지르고는 했지. 매실과 온갖 유기농 야채를 한아름 씩 안고 돌아 오는 길은 행복했지만,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와야 했던 것이 생각난다.

암으로 고생이 많았던 너는 늘 멋진 모자를 쓴 의연한 약사님의 모습이었다. 냉면을 좋아하는 나에게 진주냉면을 사 주면서 냉면을 가위로 자르지 말고 천천히 먹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냉면 먹을 때 마다 네 얼굴이 떠 오른단다. 수년 전 한국 갔을 때 내가 전국 관광 여행 중에 진주 촉석루에 들린다고 전화 하니 멋진 파란 모자를 쓰고 촉석루 계단에 앉아 나를 기다리던 네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3년 전 다시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진주에 가서 너무나 날씬해져 몰라 보게 변한 네 모습을 보고, 우리는 나오는 눈물을 참느라 가슴이 먹먹했었다.

재작년 추석 즈음에 네가 아주 멀리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16년 전 종로에서 찍은 사진을 쓰다듬어 본다. 좀 더 자주 만나지 못했던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는 진주에 가도 푸근한 너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없게 되어 너무나 슬프구나. 박순혜(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