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히 울적하여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고
까닭모를 허허로움에 서성이는 날엔
문구점엘 간다
그득그득 쌓여 있는
베일 듯 날 서게 잘 정돈된 종이들은
마치 무한 공간의 미개척지를 약속하며
고요히 주인을 기다리는 것 같고
형형색색 가지가지의 필기 도구들은
눈을 반짝인다
이것 저것 하나 하나
골고루 찬찬히
죽 둘러보고 나면
무언가 서서히
일렁이는 충만감
어느새
넉넉한 마음자리가 된다
좋은 글
몇 자씩이라도
어서 어서
적어
멀리
가까이
그리운 이들께
보내고 싶어진다
그 옛날
반짇고리를 정리하시던
어머님도
이런 마음이셨을까?
대가족 살림에
항상 바쁘시던 어머니의
그 오랫만의 잔잔한 여유로움이
난 너무 좋아
그런 날엔
어머니 곁에 말도 없이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곤 했었지
아직 달 떠 있는푸르른 새벽
기름 냄새 채 가시지 않은
막 배달된 조간 신문을
펼 때처럼
설레는 기대감 가득 안고
오늘도
문구점 문을
살며시
밀어 본다
글: 노신숙(69)